무한주제의 글쓰기
나의 첫 도시락
sea42star
2019. 2. 12. 20:45
'랩걸(호프 자런)'을 읽다가 문득 나의 어릴 적 도시락에 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의 시점은 자런이 박사 학위를 받고 난 직후 한 시간 동안의 묘사를 읽었을 때다. 자런과 같은 날 학사 학위를 받은 동료 빌도 축하해 주러 온 가족이나 지인이 없어 그 한 시간 동안을 어색하게 보낸다. 주변에서는 함께 사진을 찍고 앨범을 보고 축하 인사를 건네는 분위기인데 자런과 빌은 외딴 곳에 둘 만 서 있는 것처럼 어색한 기다림이었다. 이 장면에서 왜 나는 어릴 적 도시락이 생각났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국민학교였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락을 싸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1,2학년 때는 오전 또는 오후 수업만 하면 됐기 때문에 소풍 때를 제외하곤 학교 가며 도시락을 싸 본 기억이 없다. 어린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고 그냥 엄마가 알아서 싸 주겠거니 했다. 도시락을 가지고 가야하는 첫 날, 엄마는 밥과 반찬을 싼 도시락이 아닌 빵과 우유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 가방에 넣어주셨다. 그때 우리집은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매일 가게 일로 바쁘셨다(바닥에 어른 두 명이 한 줄로 누우면 양쪽 끝이 닿을 조그만 가게를 왜 슈퍼마켓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하다). 두 분의 바쁨은 한편으로 내가 자유롭게 친구들과 동네 및 뒷산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나는 매일 개구리, 가재 등을 잡거나 친구들과 연탄 싸움을 하는 등의 놀이들로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내곤 했다. 바쁜 엄마가 도시락을 싸 줄 시간이 없음을 당연히 여기며 나는 빵과 우유를 넣은 책가방을 메고 유유히 학교를 갔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종소리가 있었는지 멜로디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점심 시간임을 알게 되자 반 친구들은 각자 도시락을 꺼냈고 끼리끼리 모였다. 나는 당황했다. 아니 고민했다. 하지만 다들 둥근 플라스틱 보온 도시락이나 네모난 도시락 뚜껑을 열고 흰 밥과 계란, 햄, 일미 등 정성껏 담겨진 반찬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을 때 나 혼자만 다르다는 충격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방 속을 괜히 툭툭 건드리며 천천히 빵과 우유를 올려 놓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점심을 같이 먹자는 얘기를 하지 못한 채 나는 빵 봉지를 뜯고 우유갑을 열었다. 그리곤 왼 팔꿈치를 쭉 뻗어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 손으로는 빵과 우유를 번갈아 들며 천천히 나의 첫 도시락을 먹었다.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고 가끔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는 몇몇 친구들의 눈길을 피해가며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도시락을 챙겨넣는 시간에 나도 끝맺으려고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 때의 빵과 우유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빵은 흰 설탕 덩어리들이 고르게 얹혀져 있어 달았고 우유는 딸기 우유였다. 다행히 빨대를 챙겨왔기 때문에 우유갑을 들고 목을 쭉 뻗어 젖히지 않아도 되어 안도했다. 시선을 떨굴 때마다 분홍빛 딸기 우유가 빨대를 타고 오르는 장면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점심을 먹고 난 후의 기억은 없다. 아마도 평소처럼 친구들과 뛰어놀았을 것이다.
초등 3학년이었던 그 때의 나와 같은 학년의 아들을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다. 아직 윗옷을 바지 안쪽에 깔끔히 넣지도 못하고 연필도 제대로 못 잡아 엄마한테 매일 혼나는 아들. 저 때였구나. 생애 첫 점심 도시락으로 혼자 빵과 우유를 삼키던 때가.. 아들을 사진 삼아 나의 그 시절을 추억해 보며 저 아이도 요즘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세상의 노크(knock)가 얼마나 낯설고 당황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사랑스러움과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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