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흘러갈 너희들에게

 

 

인성부장 선생님이 찍으신 도리골 사진을 보고 도로와 집, 학교를 흘려보낸 골짜기를 상상했다.

여름 언젠가 생태숲에 올랐을 때는 지금 있는 지방도와 터널, 작은 도로와 집까지 지우고 숲이 무성하고 완만한 도리골을 그려보았다. (여러 해 밟아 익숙해진 산복도로 한가운데서 또는 신호대기 중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를 보고 나는 가끔 전혀 낯선 곳에 와 있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럴 수 있다!)

가을 어느 토요일엔 행사 관리로 학교에 왔다가 마음먹고 골짜기를 거슬러 발원지(?)를 찾기도 했다. 아침엔 자주 같이 흘러볼 양으로 둑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았다.

 

흘러나온 것 중 마지막은 학교였고 안과 밖의 경계에 서 있는 720여 송이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안은 갑갑하고 밖은 준비가 안 됐다며 그곳에 가늘게 뿌리 내리고 있는..

 

꼿꼿한 건 곁에 선 이팝나무 뿐 그들은 살랑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렸고 가끔 구부러지고 쓰러졌다. 아! 맞다. 올여름 연이은 쌍둥이 태풍으로 부둥켜 안은채 주저앉았고 가을엔 터를 갈기는 굴삭기의 위협에 온몸을 떨기도 했던 것 같다. 싱그럽고 찬란한 그들이지만 위태로워 보였다.

 

3월 초

아직 피어나기 전 아침이면 도리골로 스며들었다가 완전히 어둡기 전 산풍처럼 불어 나가는 그들을 상상했다. 이름을 외워두자! 나이스 사진을 보고 이름을 외우는 부질없는 짓을 반복하다 무위(無爲)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곤 했다.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아이들이 오는지 가는지

알 듯 모를 듯한 시간들을 보냈는데 어느덧 운동장 언저리에 피어 있었다.

해를 보고 활짝 피어 낸 것만으로도 예쁘고 기특하다 여겼는데 그들은 어느새 경계에 섰다. 금방이라도 흘러갈 듯, 흘러가고 싶은 듯 미끄러지고 있다.

 

교문을 뒤로 하고 결국 시작된다.

내년? 후년? 조류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느끼며 새로움을 경험하겠지.

어서 빨리 이 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넓은 대양으로 흐르고도 싶겠지.

 

곡류를 타고 안전하게 흘러간다 여기는 순간 흐름은 멈추고 곧 표류할 때가 온다.

출발 전 방향타부터 찾자. 강폭이 넓어질수록 잡아야 하는 게 있다.

얼마간은 가족과 친구, 선생님이라는 물살을 타겠지만 대양을 만난 그 때

내가 손에 쥔 것이 그게 아니라면 곧 당황할 순간을 맞는다.

 

그래도

방향타를 놓친 자신이 바보같아 후회스럽거나

바람과 파도를 볼 수 없어 위축되거나

돛을 움직일 수 없어 곤란한 지경이더라도 절망하며 가라앉진 말자.

 

다시 이곳으로 스며들자.

언저리라도 좋으니

가는 뿌리도 괜찮으니

흔들려도 피어나지 못해도 괜찮으니

이곳 도리골로 스며들어 너희들을 꽃으로 보는 이들의 품속에서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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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골에서 흘러나온 것들>

 

집과 도로

그리고 학교

 

이 모든 게

구석진 끄트머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전경은

김석진 손 끝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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