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을 입은 나의 아이들에게 -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누구에게도 관심을 바라지 않아.
그래서 포착하기도 쉽지 않지.
 
막상 표범이 나타나자, 숀은 카메라 렌즈 너머 표범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는 거야.
그러곤 이렇게 말해.
“간혹 너무 아름다운 것들은 찍지 않아. 그냥 그 순간에 함께 머무는 게 더 완벽할 때가 있지.”
 
그랬다.
너희와 머물러서 행복했고 나에겐 완벽한 순간들이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진짜 너를 포착하기는 앞으로도 힘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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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면활성제 -

(부제: 수능과 졸업을 앞둔 우리 아이들에게)

 
하늘과 땅
상상과 현실
물과 빛의 경계에 선
무지개가 찬란하듯
 
너희도 경계에 섰다.
어른과 아이
틀과 자유
준비와 성취의 경계
 
양껏 이과스런 별명을 붙이고 싶다.
 
세계에 편 먹지 말고
너가 스며드는 모든 물과 기름 사이에서
세상을 뒤집고
담을 뛰어 넘길.
 
벌써 뒤집었더라?
복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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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없이 크는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많이 구겨지며 큰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지금도 구겨져 있는 나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면
훤칠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로
다들 깜놀할 걸?

많이 놀랠까봐 참고
계속 구겨 숨겨 놓으마. 흥*-

 

 

* 흥(興)이 많이 나는 한해였다. 담임을 하며 이리 사랑스러운 뇨석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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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오르기 시작했다.

흐르다보니 산을 만났고
힘겹게 오르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떠오르기 시작한
내 친구들처럼 살짝 겁이났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오랜 꿈이었다.
드높은 하늘 위로 오르는 건.

나를 압박하던 소음들이 줄어들고
가득 머금은 기대만큼 나는 부풀기 시작한다.

추워지고 있다.
몸집을 키우려 젖 먹던 힘까지 짜 내다보니
자꾸 더 추워진다.

춥고 배고픔에 눈물이 흐른다.
강과 나무, 도로와 집들이 점점 작아지는데
그들이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보이나?

같이 있을 때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내게 신경도 안쓰던 이들이 나를 올려다 보며
환희에 차 미소짓고 있다.

아! 
눈물.. 이것이었구나.
나는 변하고 있었다.
새털처럼
비늘처럼
면사포처럼
때론 담요나 탑 모양으로 나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눈물이 나를 안는다.
힘겹게 오르며 뿌린 눈물은
진짜 내 모습을 알려주려 
하늘에 나를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나는
생겼다 사라지고
더 높은 곳에서 얼어 반짝이기도 하며
푸른 하늘의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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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고
저녁을 먹은 후 차근 차근 읽어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마음의 눈도 번쩍 뜨였다.

 

지난주 목요일
별을 보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구름이 많은 날이라 별로 볼 게 없다고 했음에도..)
야자 시간에 같이 옥상 문을 열었다.

(베가, 알타이르, 데네브 정도만 볼 수 있는 하늘이었지만)
아이들이 매트에 누워 하늘을 보자
그날 겨우 볼 수 있는 직녀별(베가), 견우별(알타이르), 데네브 등을
가리키며 몇 가지를 얘기해주었다.

 

(볼만한 게 이게 다인데..)
나는 생각했지만 예상 못한 이벤트들이 벌어졌다.

인공위성이 몇 개 하늘을 가로지르고
서쪽 하늘에서는 별똥별(화구)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인공위성이든 별똥별이든
처음 본 거라며 흥분하고 환호했다.

이날의 짧은 관측이
밤하늘을 늘 보는 나에겐 그리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겐 아니었다보다.

아이들의 흥분은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계속되었다.
또 옥상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이 잘 나와서 색감을 보정해 보내주었더니 더없이 좋아했다.
(나중에 들으니 가족들, 친구들에게 엄청 자랑했다고 한다.)

 

다음 날 종례 후에는
세 명이서 교무실에 찾아와서는 큰 절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종례 후 찾아와서
각각 쓴 편지를 나에게 주었다.
(읽어보고 후기를 DM으로 날려달라며..ㅋㅋ)

아이들 편지를 읽고 알았다.
지난 주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별, 인공위성, 별똥별, 목성, 토성 등을 본 경험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는지를..

시험과 성적 부담으로
답답했던 마음들이 뻥 뚫린 것 같다는
아이들의 추억어린 감상평을 몇 개 옮겨본다.

 

...집 가는데 너무 행복했고 답답했던 게 조금 나아졌던 것 같아요ㅠㅠ

그날 너무 신나서 가족들한테도 자랑하고 친구들한테도 왕창 자랑했잖아요ㅎㅎ

너무 추억으로 잘 남을 것 같은 일이었는데
그 추억을 만들어 주신 ○○쌤께 감사의 말씀을전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왜 별 보러 다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젠 알 것 같아요.
정말 그 순간엔 아무 생각도 안나고 그저 신기하고 좋았어요.

저는 이때까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많이 없는데 이젠 생겼어요!
별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아무런 생각이 안들어요.

시험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던 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ㅠoㅠ

친구들과 별보고 나서 다같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별보니깐 울컥하더라'
'신기했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
였어요.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일 것 같다고도요.

시험 끝나고 또 기다릴게요. 또! 꼭! 보여주세요!
근데 그땐 왠지 별보고 울 것 같아서 휴지 왕창 들고 가야할 것 같아요. 헤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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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교지 '마지막 종례'

나의 10대도 폭풍 같은 시절이 있었다. 어린 아이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나는 아이와 어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주변을 맴돌았고, 혼란 속에서 설레임 그리고 불안함, 기대감과 좌절감이 공존했었다. 넓은 사막과 같은 곳에 있는 듯한 메마름도 있었고, 이해 못할 어른 세상의 장면들이 신기루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기쁨과 감격도 누렸다.

20대가 되어 나름의 정체성을 찾을 무렵.. 군 제대 3개월을 앞두고 밤마다 고민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던 중 인생의 푯대를 세 가지로 결정했다. 그 중 하나가 십대인 너희들이다!

아이들아~ 너희들의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큰 포부로 올해 3월을 시작했단다. 하지만 시작부터 내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작년인가 EBS에서 방송되었던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문구가 며칠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한번씩 “아이들아~”라고 부르며 짧지만 진심의 설교 아닌 설교를 했던 것을 기억할거야. 이런 말도 했을거야. “어른들로부터 100을 다 배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50은 절대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50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가 끝나도 나의 첫 담임반 제자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유는 너희들도 잘 알거야~;;ㅎㅎ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 ‘짝짝이 눈’을 가지거라! 한쪽은 로컬(Local)한 눈으로 자신과 친구들 그리고 가까운 주변을 보는 눈이고, 다른 한쪽은 글로벌(Global)한 눈으로 우리가 사는 지역을 넘어 다른 나라와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길 바란다. 맨날 눈에다 뭐 그리지만 말고, 이런 짝짝이 눈의 위력을 어른이 되면서 경험해 보길 바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지는 함께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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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간들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

 

노파심에

다른 반 아이들에게 보다

가혹하게 야단치고 윽박지르기도 해

눈치를 보며 숨어드는 너를

미안함을 눌러둔 채

차갑게 바라보곤 했다.

 

야간에도

가장 많이 남아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는

너흰 나에게 한아름의 꿈이다.

 

마음 깊이 응원한다!

인생의 큰 문턱을 넘는 시험 앞에선

너희 한 명 한 명을.

 

- 2021.11.10 수능을 코앞에 둔 꿈같은 나의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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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소설을 읽으면 삼분의 일이나 절반 정도에서 대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할 수 있다. 결말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방향을 몇 가지 정도로 대략 그려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삼체'는 아니었다.

반전도 아니다. 반전은 예상되는 전개를 뒤집는 것이기에 결말 이전에 독자가 이야기 전개를 미리 예측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런데 이건 뭐...

나는 '삼체' 제3권 마지막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상상력을 농락당했다.

 

SF를 좋아하지만 책이든 영화에서든 평소 우주함대 이야기가 나오면 좀 유치한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이젠 그러지 못하겠다..

 

SF 소설이면서

인류사

문명사

문화사

세계관

우주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소재로 이 거대한 시간, 공간, 차원 스케일의 이야기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책이든 영화든 내가 이제까지 본 콘텐츠 중에 스케일이 가장 압도적이다.

 

시간과 공간을 이렇게 우아하고 거대하고 다루다니..!

몇년 전 읽다가 던져버린 「엘러건트 유니버스」에 다시 눈길이 갔다.

 

류츠신은 내가 상수로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을 변수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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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가끔 보면 사랑스럽다
너희들도 그렇다.

- 나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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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엄마들이 똑똑해져
아이의 환경을 설계하는데 능숙하다.

설계도 안에서 아이는 키와 몸무게
그리고 활동 반경이 제한된다.

부딪히고 깨지며 뼈마디가
단단해질 기회를 잃는다.

바람만 조금 힘주어 불어도
부러질 것 같다.

왜 과도한 설계로
상처를 피하게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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